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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둔 좋은 글

누구를 위해서 시를 쓰나 / 이기철

by 차느디 2017. 1. 31.


 

 

      누구를 위해서 시를 쓰나 - 이기철

 

       누구를 위해서 시를 쓰나

    문득 바람 앞에서 물어 본다

    새들은 산자락을 소리 없이 날고

    꽃은 들판 끝에 향기롭게 피어 있다

 

    누구를 위해서 시를 쓰나

    나는  새들 대답하지 않고 피는 꽃 소리 없이 피는데

    떨어지는 나뭇잎을 밟으며 

    나 혼자 아프게 묻고 있다

 

    길은 동서남북 어디로든 뻗고

    물은 낮은 곳을 향해 흐르는데

    내 말 알아듣지 못하는 나무가지에

    내 몇 마디 말 걸어 주며 대답한다

 

    나는 지는 해를 향해 노래하지 않고

    뜨는 해를 향해  노래한다고

    나는 죽은 이를 위해 시를 쓰지 않고

    나와 같이 이 땅의 쑥갓잎을 먹고

    이 땅의 저녁 연기 함께 바라볼 사람을 위해 

    시를 쓴다고  

 

    어제의 추억, 어제의 그림자를 위해 시를 쓰지안고

    오늘과 내일, 우리 곁을 나는 새, 풀 뜯는 소.

 

    아, 기쁜 일 같이 기뻐하고 슬픈 일 같이 슬퍼하는,

    어느 길 위엣라도 만나 내 그의 이름 부르면

    그도 달려와 내 이름 불러 줄 사람들을 위해

    아픈 시대의 등을 매만지며

    나는 오늘도 열줄의 시를  쓴다

 

                       

            ◐ 이기철시선 『 청산행』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