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물펌프 밑에는 엄청난 양의
시원한 지하수가 흐르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른 사람은 이 펌프 물로
목을 축이고 가셔도 좋습니다.
그러나 단 한가지 명심해야 할 사실은
펌프 앞에 놓은 바가지의 물만은
절대로 마시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물을 펌프 안에 넣어서 열심히 펌프질을 해야만
지하의 물을 끌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펌프 안의 물을 퍼올려 목을 축이셨으면
떠나기 전에 잊지 말고
그 바가지에 다시 한가득 물을 퍼놓고 가시기 바랍니다.
나중에 올지도 모르는 또 다른 나그네를
위해서입니다.”
짧은 내용의 이야기이지만 큰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그 나그네가 펌프의 물을 마실 수 있게 된 것은
그보다 앞서서 펌프를 다녀갔던 수 많은 사람들이
팻말의 충고대로
바가지의 물만은
마시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점이다.
만일 앞서서 이 펌프를 거쳐간 사람 가운데에서,
단 한 사람이라도 팻말의 충고를 무시하고
바가지의 물을 마셔버렸다면,
사막의 유일한 펌프는
그 순간을 마지막으로 영원히
물을 뿜어낼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
모두들 아주 사소하지만 가장 중요한 질서,
타는 듯한 목마름을 참아내고
바가지의 물을 소중하게 지켜왔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한 바가지의 물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점이다.
메마른 사막 한 가운데에서
시원스러운 물줄기를 뽑아 올릴 수 있는
한 바가지의 물,
엄청난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그 물은
우리에게 무한한 발전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원동력,
어떤 일을 시작하는데 있어서
힘이 되어주는 근원인
것이다.
이 펌프 이야기에서 강력히 상징하듯
우리에게 오늘이 있는 것도
어쩌면 우리보다 앞서간 사람들이 남겨놓은
한 바가지의 물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기업에서는 밤을 새워가면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좀 더 편리한 시스템으로 만들기 위해서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어디에선가 남모르는 노력을 통하여
지금 자신의 명예보다는 내일의 발전을 위해서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지친 나그네는 팻말 앞에서 잠시 생각한다.
그리고 그도 역시 바로 눈 앞에 놓여 있는 한
바가지의 물을
펌프 안으로 부어 넣고는
열심히 펌프질을 하는 것이다.
마침내 펌프에서는 맑고 시원한 물이 쏟아져 나오고
그 물로 마음껏 목을 축인 나그네는
행복에 넘치는 표정으로
펌프 앞에 이런 쪽지를
남겨놓는다.
“이 한 바가지의 물은 단순한 물이 아닙니다.
뒤에 오는 나그네여.
당신이 잠깐 동안 목마름을 참고
한 바가지의 물을 지킬 수 있다면
이 펌프 물은 앞으로도 목마름에 지친
수많은 나그네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죽을 지경에 이르는 목마름을 참고
얼굴도 모르는 뒷날의 나그네를
위하여
다시 한 바가지의 물을 남겨 놓는 마음,
그것이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것이라면
지금 자신이 다가올 미래를 위하여 남겨놓을
한 바가지의 물은 무엇일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신영철 지음 <신사장의 편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