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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둔 좋은 글

고양이스님

by 차느디 2016. 7. 2.


 






고양이스님
 
 
골목의 음식쓰레기를 뒤진 죄로
'도둑'이라 불리는 생이 있습니다.
더러 도둑이라는 말 대신 '길'을 붙여주기도 하지만
배회하는 노숙이라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습니다.

도둑도 길도 마뜩찮아,

절간으로 거처를 옮긴 고양이가 있답니다.
햇살이불을 덮고 늘어지게 낮잠 들다가도
자리 털고 일어나 말씀을 듣는 진지한 눈빛.
공손한 그림자를 봉당에 벗어놓기도 한답니다.
그런 날은 특별공양도 있답니다.


어둔 길을 짚는 보살들이 걱정돼 따라가기도 합니다.
걸음 멈추면 따라 멈추고
뒤돌아보면 딴청을 피우기도 한답니다.
"스님, 고생하셨는데 드시지요."
먹을 것을 놔주면, 지나는 벌레며 새들도
한술씩 들고 가라고 남겨둔답니다.
공양간 기웃거리는 서생원은 겁만 줘서 보내고
늦은 밤 절 한 바퀴 휘이 돌고나면 하루가 문을 닫는답니다.


근황이 궁금한 어느 절의 그 고양이.
정감 있고 애틋해서 올려봤습니다.
도둑고양이나 길고양이에서 더 나아가
스님으로 불러주는 넉넉함은 환경과 정서가 주는 차이,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나와 상대의 위치가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 최선옥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