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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둔 자연풍경

중국역사에도 이렇게 지나칠수 없는 기생일화가 있답니다

by 차느디 2009. 7. 4.

 

얼마전 죽계선생님의 블로그에서 <기생들의 시>와 기생들에 대한 글들을 읽었고
한국의 산천님 블로그에서 이매창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황진이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중국역사에도 이렇게 지나칠수 없는 기생일화가 있답니다.
그중에서 가장 이름있는것이 명말청초 南京의 秦淮八艶이라고 불리는 기생들입니다.
진회강변의 전설을 알고있는 두두님으로서는
이름만 새겨도 자연히 脂粉냄새가 짙게 안겨오지만
사람을 놀라게 하는것은 이 진회강변가에
바로 그 이름난 "夫子廟"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진회강변의 기생집들과 가장 가까운 이웃이
공자님을 모시며 제사를 지내는 孔廟라는 것입니다.
허란설란의 글 한단락이 생각납니다.
'옛날의 접(接)은 재주(才)가 있었는데
오늘의 접(接)은 재주(才)가 없다'
(古之接有才, 今之接無才)
사실은 안그런가 봅니다.
여자가 있는곳에 기생이 있는곳에
才가 있고 接이 있나 봅니다.
전하는데 의하면 秦淮八艶은 顧橫波, 董小宛, 卞玉京, 李香君,
寇白門, 柳如是, 陳圓圓, 馬湘蘭 등을 가르킵니다.
그중 顧橫波는 誥命 一品夫人이고
董小宛은 청나라 順治황제의 귀비였으며
陳圓圓은 명조장령이며 청조의 운남왕이였던 吳三桂의 첩이였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이들 여덟한테 공통점이 있다면
명말청초의 난세에 태여나서 민족적절개가 뛰여났고
사랑과 우정에 충성하였으며
하나같이 琴棋書畵, 詩詞歌賦에 조예가 깊었습니다.
(董小宛)
그들의 운명을 잠깐 들여다보면
董小宛은 워낙 명말 四才子중의 하나인 冒씨네 집 첩이였으나
황궁에서 우울하게 지내다 병들어 죽습니다.
(陳圓圓)
陳圓圓은 吳三桂의 첩이였으나
농민수령인 李自成이 북경에 쳐들어오면서 李自成한테 들어갔다가
吳三桂가 청나라 군을 이끌고 북경에 들어오면서 다시 吳三桂 옆에 돌아옵니다.
吳三桂가 운남왕으로 있게 되자 출가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柳如是)
柳如是는 錢謙益이라는 명나라 대관료에게 시집갔다가
청나라군이 쳐들어오자 같이 물에 뛰여들어 자살하기를 권합니다.
錢은 물이 넘 차다는 이유로 자살을 거절합니다.
錢은 청나라에 항복하지만
柳는 그와 반대로 적극적으로 抗淸義士들을 돕고 나섭니다.
(李香君)
李香君은 侯方域이라는 이름난 선비를 좋아했으나
侯方域이 청조에 항복하여 청조가 조직하는 과거에 참여하고 실패하자
출가하여 道士로 일생을 마칩니다.
紅顔薄命이라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말을 실감할수 있습니다.
그들의 작품은 대부분 분실되였는데
그중 柳如是의 시가 많이 전해지고 있고
중국의 故宮박물관에서는 馬湘蘭의 蘭花를
無錫박물관에서는 董小宛의 蝴蝶圖를 전시한적이 있습니다.
(馬湘蘭)
얼마전에는 秦淮八艶이 남경의 "夫子廟문화벽"을 차지하면서
큰 화제로 오른적이 있습니다.
성스러운 공자님의 문화에 기생들이 한자리 차지하다...
어찌보면 조롱같지만
그 성스러운 공자님의 자제분들을 무색하게 하는
그들의 재간과 절개와 의지,
그 문화벽에 부족한것이 또 뭐가 있겠습니까?
몇년전에 이 秦淮강변에 가본적이 있습니다.
밤에 시끌벅적하고 불빛이 찬란한 靑樓를 바라보노라니
당금이라도 누군가가 창문을 열어제치고
손수건을 흔들면서 부르는것 같았습니다.

"公子님, 내일도 또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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